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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림선사와 임체사 참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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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891회 작성일 08-12-1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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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림선사와 임제선사 참배 글

백림선사栢林禪寺
백림선사는 석가장石家莊시에서 버스 편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이절의 옛 이름은 조주 관음원 觀音院이었다.백림선사는 중국 선종역사에 가장 많은 화두를 남긴 유명한 조주선사가 40년간 주석하시던 사찰 로서, 문화혁명 때 사찰 건물 모두가 파괴 되었으나, 조주선사를 국사로 추앙하는 뜻에서 건립된 조주진제 국사 탑(趙州眞際國師塔)과 측백나무만은 화를 면했다고 한다.

조주선사에게 어느 제자가“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선사는“뜰 앞의 잣나무다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라고 화두를 던졌다.그래서 백림선사의 뜰 앞에는 조주의 기풍을 알리는 천년 수령의 측백나무 26그루가 서있다. 선사는 80세 때부터 이곳 조주성趙州城백림선사에 주석하였다하여 호를 조주라 부른다.

선사가 세상의 존경을 받게 된 것은 100세가 넘어서였다. 조나라 왕인 왕용과 연나라 왕인 유인공이 전쟁을 시작하려다 조주스님의 설법을 듣고 전쟁을 멈추게 된 것이 시작이다.

조주선사는 특히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많이 남겨 후대 선승들의 수행 과제가 되었다.<벽암록>과 <경덕전등록> <조주선사 어록>에 전하는 100개의 화두 가운데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끽다거 喫茶去 무자화두無字話頭.구자 무불성狗子無佛性 등 12개가 조주선사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림선사는 도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한국에서는 볼수 없을 정도로 사찰의 규모가 대단히 크고, 조주선풍 의 역사적 향기를 지니고 있어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매일 물결을 이룬다.
순례자들과 함께 대법당에 예불을 올리고, 조주선사의 탑과 정전백수자란화두를 상징하는 측백나무를 배경으로 카메라에 담은 뒤 1시간 거리에 있는 임제사로 향한다.

★임제사
임제사는 서기540년에 창건한 규모가 크지 않는 고찰이다.임제선사가 주석할 당시는 선객들과 신도들로 북적 였다. 그러나 당나라 말기 소실되어 묘탑만 남아 유적지로 관리되어오다가, 근래에 대웅전과 법유당 원통전 요사채 등을 지어 아담한 사찰로 복원하였다.

“수처작주隨處作主=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입처개진立處皆眞=서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게 하라.는 말은 임제선사가 자주 쓰시던 게송이다. 인도에서 들어온 선불교를 완전히 중국적인 선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선 禪하면 중국선禪을 손꼽을 정도로 발전시킨 분이 임제의현臨濟義玄선사이시다.

선 법문을 할 때 <할喝>하고 큰 소리로 고함을 자르는데 이는 곧, 임제선사로부터 비롯되었다. 임제는 통쾌 하고 힘찬 고함으로 선기를 드러낸 분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많은 선승들의 존경을 받은 분이다.
현재까지 그를 개조開祖로 하는 임제종은 일본에서도 큰 종파를 이루고 있고, 중국은 물론 한국의 조계종 또 한 임제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융흥사隆興寺
융흥사는 임제사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다. 이 절은 수나라 586년에 창건되었고, 송나라 태조 조광윤이 중창한 뒤 42개의 팔을 가진 관세음보살을 조성하였다. 그 후 청나라 강희 황제가 다시 중수하고 절 서편에 황제 행궁을 건립하고, 1709년 융흥사로 절 이름을 바꾸 었다.

황궁사찰답게 2만여 평의 넓은 경내와 세계적인 고대예술 건축물로 유명한 대비각과 마니전. 미타전 과 미륵불을 모신 자씨전慈氏殿을 돌며 참배를 올린다.
백림사와 임제사 참배를 마치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이곳을 떠난다.\\ 험준한 산악 길을 오르고 돌며 4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야하는 먼 길이지만 관세음보살과 찬불가를 부르다보니 지루한 마음도 살아지고 어느새 오대산 숙소에 이른다.


산 진. 글 . 흥 륜 사 주 지 정 법 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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