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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의 결집과 원류(源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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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868회 작성일 21-09-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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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의 결집과 원류(源流)

 

 1. 팔리어 경전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지금부터 2500년 전의 한 인물에서 비롯된 막대한 지혜의 보고(寶庫)가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그 분은 곧 인도 북부 갠지스 강 상류의 석가국(釋迦國)의 왕자로 있을 때는 "고타마-싯다르타"였다. 그는 출가할 때 왕의 지위도 재산도 아내도 아들도 이름까지도 다 버렸다.

출가 후 6년 뒤에 깨달음을 얻고 붇다가 된 그 사람을 당시 사람들은 인천의 스승 존사(尊師)라고 부르고, 일부는 "고타마"라고 출가 전의 성()을 부르고 있었다. 지금은 붇다 또는 "석존(釋尊)""석가모니"라고 부르고 있다.

그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불리는 분이 깨달음을 열고 열반 때까지 45년 동안 쉴 새 없이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의 보고(寶庫)로써 현대에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보고(寶庫)를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말로서 "팔리(pali)"라고 불리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이 주로 활동한 갠지스 강 유역의 "마가다"나라"코사라"국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다섯 여섯 종류의 인도어로 가르침을 설하셨다.

그 가르침이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완전한 깨달은 제자들에 의해서 녹음된 것처럼 한 구절도 빠뜨리지 않고 잘못되지 않고 팔리(pali)로서 정리되었다. 언어는 석가모니부처님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마가다"어를 그대로 전해졌으니 그것이 현존 팔리(pali)어 경전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經典)을 범어로 수트라(sutra)라고 한다. 

 

부처님 경전의 결집(結集)

불멸후 부처님 제자들이 스승께서 설법하신 내용이 흩어지지 않게 저마다 듣고 외워두었던 것들을 철저히 검정하고 논의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편집하여 집대성한 것을 결집이라 한다.

 

1차 결집(結集)

1 결집은 빠르고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가르침이 흩어지고 빠지거나 외곡 될 것을 염려하였던 수제자 "마하가섭" 존자를 중심으로 부처님열반 후 3개월 뒤 500명의 제자들이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칠엽굴(七葉屈)에 모여 평생 부처님법문을 가장 많이 들은 "아난다 존자가 경전經典)을 기억하여 외워내고, "우파리 존자가 계율을 암송해내면, 500백 명의 아라한들이 틀린 부분이나 잘못 된 곳이 없도록 정확히 검정하여 확정하였다.

이것이 제일결집(第一結集)이다. ()· ()·()의 삼장(三藏)으로 구성된 경전 가운데 경()과 율()은 이때 확정되었다. 그러나 논()은 제삼결집(第三結集)까지 무엇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제일결집(第一結集)에서는 구두전승문화(口頭傳承文化)였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최초결집 500백 결집이라 하는데, 이후 모든 경전의 골격이 되었다.

 

 2차 결집(結集)

불멸 100년 뒤에 "마가다"국과 "코사라"국의 중간에 있는 "비사리"라는 도시에서 아난존자의 제자 야사비구가 중심이 되어 700비구가 모여 보수적인 장로부가 부처님 당시 계율을 준수할 것을 결의하자, 이에 진보적인 대중부가 거세게 반대하면서, 오전 이라면 몇 번이라도 식사를 할 수 있게 하자, 아플 때는 알코르 성분이 적은 술을 마셔도 되게하자, 시주로부터 돈을 받아서 모아도 된다, 한 곳에 모이지 않고 따로 포살을 해도 좋다.는 등 변경한 계율의 항목이 열 개나 되었다.  이로서 가족처럼 사이가 좋았던 교단이 분열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계율의 이러한 개변에 대해서 인도 서북부나 남서부로부터 장로비구들이 모여들어 비사리에서 합의한 열 가지 항목을 모두 잘못이라고 백지화시키고 다시 경전결집을 행하였으니 이것을 2차 결집, 또는 700백결집 결집이라 한다.

이로 인하여 불교는 인도 북서 남서 상좌부와 시대에 맞게 계율을 바꾸려던 인도 동북부 대중부가 분열되어 1백년 이상을 서로 독자의 길을 걸었다.

3차 결집(結集)

불멸 200년 후 세상에 나온"아쇼카"왕은 갠지스와 인더스의 두 큰 강을 포함한 인도 북부를 정복하고 "마울야"왕조 제3대 왕이 되고, 데칸고원이나 인도남부까지 정복하고 인도 전역을 통일하였다.

"아쇼카"왕은 동생의 권유로 불교에 깊게 귀의하였다, 이 때 교단은 여러 부파로 분열되고, 경전이나 계율이 자의적으로 개편되고, 스님이나 재가자의 정신이 황폐되어 불교가 쇠퇴하여 가는 모습을 우려한 "마울야"왕조의 수도 화씨성 계원사에서 아쇼카 왕의 지원으로 목갈리풋타 티사의 주재 하에 1,000명의 비구가 모여 경, , 론 삼장 (三藏)을 정비하고, 불교교단의 화합을 유도하였다. 이 때 경전이 최초로 문자화되었다. 이를 화씨성 결집 1.000결집 3결집 이라한다.

상좌부는 3차 결집 후 아쇼카왕의 권유에 따라 왕자 마힌다" 스님을 중심으로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도하여 남방 소승불교의 시효가 되게 하였다.

중국 티베트는 북서인도와 밀접한 지형적 관계로 대중부 (설일체유부)계통의 불교를 받아드려 오늘의 대승불교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본다.  

 

여래오시如來五時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설하신 지혜의 가르침을 크게 다섯 시기로 분류한 것을 여래(如來)오시(五時)라 한다. 화엄시. 녹야원시 아함 방등시. 반야시, 법화열반시를 말한다. 

 

경전의 구성

불교의 모든 경전은 서론<서분>  본론<정종분> 결론<유통분>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육성취(六成就) <육가원칙> ()성취 ()성취 ()성취

()성취 ()성취 ()성취 여섯 가지요건을 가추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틀림없음을 확인하는 신성취(信成就=여시(如是)

내가 직접 들었다는 문 성취(聞成就 = 아문(我聞)

설법의 때를 명시하는 시 성취(時成就 = 일시(一時)

설법을 한 분이 부처님이라는 주성취(主成就= ()

설법한 장소를 밝히는 처성취(處成就 =재사위국(在舍衛國)

어떤 사람이 들었는가를 밝히는 중 성취(衆成就=여대비구(與大比丘)

   그래서 모든 경전이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여대비구중"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서분은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아난)부처님말씀을 이와 같이 들었다. 유통분은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으로 끝맺는다.

 

5. 불기<불멸 해[]>"아쇼카"왕의 연대로부터 산출할 수 있다.

"아쇼카"(재위 BC268~232)의 연대가 거의 확실하다고 볼 때, 그보다 2백 년 전으로서 석가모니부처님의 연대를 알 수 있다. 부처님은 기원전 483년 전에 이멸한 것이 정확하다고 보고 불력(佛曆)으로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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