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님의 중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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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1,445회 작성일 21-08-23 13:50본문
관세음보살님의 중매
조선 순조 7년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에 70노모를 모시고 나무장사로 생계를 꾸려가든 장가를 못간 윤덕삼尹德三 이란 노총각이 있었다.
매일 첫 닭이 울면 세검정 자하문을 넘어 종로와 나무를 팔고는 하였다.
외아들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노총각이 되도록 장가를 못가 자손이 끊기게 될까봐 노모는 걱정이 많았다.
어느 날 그는 나무 짐을 지고 세검정을 지나다보니 개천 높이 수십 척이 되는 바위에 부처님이 있었다.
그 부처님 앞에 수십 명의 여자신도들이 공양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저렇게 빌면 돌부처가 소원이라도 들어 주는가?”불공을 드리고 오는 아낙에게 물었다. "바위부처님께 절을 하고 빌면 소원이 이루어집니까?"
"이 총각아! 저 바위는 돌이 아니고, 부처님이기 때문에 일심으로 빌면, 천리만리라도 오셔서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네....
정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저 바위만 보이지만, 정성이 지극하면 무정한 돌도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변신하기 때문에 소원을 이루고 못 이루는 것은 그 돌부처께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의 정성에 달려 있는 걸세." 하고 아주머니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윤덕삼은 귀가 번쩍 열려 그날부터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무 짐을 바쳐 놓고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빌기 시작하였다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어서 장가를 들어 자손을 보고, 부자가 되어 나무장사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점심도시락을 부처님께 올리고 기도를 올렸다.
백일기도를 마치든 날밤 꿈에 노 보살님 한분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자하문 계천가에 사는 보살인데, 네 정성이 지극하여 중매를 서 주려고 한다. 내일 새벽 나무 짐을 지고 자하문 밖에 있다가, 첫 번째로 만나는 여자를 보거든 그를 대리고 너의 집으로 인도하면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하였다.
꿈이지만 덕삼은 "고맙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새벽 나무 짐을 지고 바뿐 걸음으로 자하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간밤 꿈의 예언대로 어여쁜 처녀가 치마를 덮어쓰고 덕삼의 앞으로 오고 있었다.
덕삼은 이때 "놀라지 마십시오. 실례인 줄 아오나 어디로 가시는지 제가 길 안내해드리겠습니다.“하자, 낭자는 뜻밖에도 고운 목소리로 "저는 윤덕삼이란 총각을 만나려 갑니다."하였다.
"네? 그러세요. 저는 심낭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나오셨나요?"
”간밤 꿈에 노 보살님이 오셔서 “내일 새벽 자하문 밖에서 윤덕삼이란 너의 배필을 만나게 될 것이니 나가서 맞도록 하여라.”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좋은 집안에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나 결혼을 하였지만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고, 두 번째 시집을 갔으나 혼인하던 날 남편이 심장병으로 죽어서 친정에서 부모님과 있던 차 어제 밤 자하문 계천에 사는 노 보살님이 와서 "내일 새벽문밖에 나가면 윤덕삼 이란 도령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윤 도령이 너의 평생배필이니 따라가서 살라. 하시더군요.
이렇게 인연된 덕삼과 심 낭자를 자하문 돌 관세음보살상 앞으로 가서 절을 올리면서 ”배필을 찾아주셔서 부처님 감사합니다.“하고 얼굴을 들고 쳐다보니 간밤 꿈에 보았던 그분과 꼭 같았다. 그래 두 사람은 감격해하며 ”관음보살님이 맺어주신 이연으로 잘 살게 되었는데 삼덕이 어머니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심 낭자는 명문대가의 규수로서 비록 시집은 두 번 갔으나 신혼방도 치루기 전에 남편이 죽은 터라 처녀에다, 친정집에서 10년을 기다리던 터라 부족함이 없는 배필이었다. 딸이 불쌍했던 친정어머니는 귀한 금은보석을 한 보따리 싸주며 마음대로 가서 잘 살아보라" 떠나보냈다.
윤덕삼은 차하문 돌 관음보살님께 수없이 감사드리며, 혼사를 치룬 후, 심 낭자가 가지고 온 재물로 집과 논밭을 사고 아들딸 잘 낳고 양주군 신도면 일대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평생을 잘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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